분명한 것은, 디오클레티안의 기둥들이 디오클레티안 이전과 이후 기둥들과 건축학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두 가지 사례를 들 수 있는데, 첫번째는 트라얀이 세웠던 트라얀 기둥이고, 두번째는 포카스가 세웠던 포카스 기둥이다.

출처> http://arachne.uni-koeln.de/item/marbilder/675245 (왼쪽)
http://www.google.de/imgres?imgurl=http://www.antikefan.de/staetten/italien/rom/tempel_foren/bilder/F19B19_800.jpg&imgrefurl=http://www.antikefan.de/staetten/italien/rom/tempel_foren/trajansforum_04.html&h=800&w=530&tbnid=5DETsy9oezii0M:&zoom=1&tbnh=92&tbnw=61&usg=__QIwTh68jpwcApa4Zk-h274E2nSg=&docid=zJkX9nA-b67F_M (오른쪽 - 기원후 2세기 다키아 전쟁 발발에서부터 승전까지의 스토리를 부조로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트라얀 기둥의 부조는 로마 서사 예술의 걸작이라 정의내릴 수 있다)
http://www.google.de/imgres?imgurl=http://www.antikefan.de/staetten/italien/rom/tempel_foren/bilder/F19B19_800.jpg&imgrefurl=http://www.antikefan.de/staetten/italien/rom/tempel_foren/trajansforum_04.html&h=800&w=530&tbnid=5DETsy9oezii0M:&zoom=1&tbnh=92&tbnw=61&usg=__QIwTh68jpwcApa4Zk-h274E2nSg=&docid=zJkX9nA-b67F_M (오른쪽 - 기원후 2세기 다키아 전쟁 발발에서부터 승전까지의 스토리를 부조로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트라얀 기둥의 부조는 로마 서사 예술의 걸작이라 정의내릴 수 있다)
기원후 2세기 초반 황제 트라얀은 스스로의 주도 하에 포룸을 만들었는데, 학자들은 그 포룸을 트라얀 포룸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트라얀 포룸 서쪽 끝, 다시 말해 트라얀 포룸 정문과 마주보는 곳에 그 유명한 트라얀 기둥이 세워졌는데, 오늘날 남아 있는 트라얀 기둥은 (맨 꼭대기 황제 트랴안 전신상을 제외하고), 기원후 2세기 초반 정확히 말해 기원후 113년의 것이다.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높이 38미터의 트라얀 기둥을 통해 우리는 디오클레치안 기둥들이 맥락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트랴안 기둥을 둘둘 말면서 올라가는 면에는 트라얀의 다키아 -오늘날의 루마니아 부근 - 전쟁의 내러티브가 부조로 새겨져 있다).
한편 디오클레치안 사후 세대 세워졌던 포카스 기둥은 포룸 로마눔 안에 세워져 있어 우리는 포룸 로마눔 안에 디오클레치안 기둥들이 세워졌던 당시 모습을 조금이나마 상상해볼 수 있다. 포카스는 기원후 609년 비잔틴 제국 (동로마 제국, 서로마 제국은 기원후 476년 멸망했다) 황제였는데, 옛 제국의 수도와 이탈리아를 종교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교황 보니파체 4세에게 판테온을 헌정할 정도로 정성을 다했다. 옛 제국의 수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려는 의도에서 그는 또한 포룸 로마눔 서쪽에 기둥을 세웠고, 포카스에게 신세를 진 사마르가드라는 이가 번쩍이는 포카스 전신상을 기둥 꼭대기에 세웠다고 한다. 콘스탄틴 개선물과 비슷하게, 포카스 기둥 역시 기원후 7세기 당대 예술 사조에 걸맞게 만들어진 것이 아닌, 기원후 2세기 출처 미상의 건물 기둥을 옮겨놓은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로마에는 더 이상 숙련된 조각가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 옛 건축물 일부의 재활용을 경제적인 이유나 옛 전통에 대한 자부심 표현으로 해석하고 있다.
포카스 기둥의 현존 모습. 맨 꼭대기에 세워졌던 황금 전신상은사라졌다.
출처> http://arachne.uni-koeln.de/item/marbilder/5193781
콘스탄틴 개선문에 묘사된 기둥들은 트라얀 기둥과 포카스 기둥 사이에 존재하는 기념물이다. 그 기둥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가졌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적어도 그것들이 어떤 이유에서 세워졌는지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우리는 결정적인 유물을 가지고 있다: 포룸 로마눔 북서쪽에서 발굴된 기둥 받침대는 겉면에 새겨진 부조의 예술 양식상 기원후 3세기 초반으로 연대를 측정할 수 있다. 크기로 보아 트라얀 기둥이나 포카스 기둥과 같은 기둥 형태의 밑받침으로 쓰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겉면에 새겨진 부조들의 내용으로 보아 그리고 발굴 장소를 참조해 볼 때 로마 황제가 자신의 치적을 만천하에 알리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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