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4일 목요일

포룸 로마눔, 천년 제국의 심장 0.2.

포룸 로마눔은 시청 광장과 같은 공공 장소이다. 엄밀히 말해 이곳은 구릉과 구릉 사이에 위치한 쓸모 없는 땅이었다. 하지만 구릉에 위치한 부족들이 모임을 갖기 시작한 후 점차적으로 공공 장소로 자리잡게 되었다. 특히 기원전 2세기부터 허허벌판에 가까웠던 포룸 로마눔에 기념비가 세워지고 각종 공공 건축물이 들어섬으로써 수도 로마의 중심부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까지 상전벽해를 경험했던 포룸 로마눔에는, 오늘날의 시청 광장과는 다르게, 로마의 정치, 경제, 문화적 역학 관계가 건축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수도 로마 내에서 포룸 로마눔이 갖는 이러한 상징적 의미 때문에 필자는 포룸 로마눔을 선택하였다. 그 상징적 의미는,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로마와 로마 이외의 정치 세력과의 상호 관계를 규명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요컨대 수도 로마의 포룸 로마눔은 지중해 전체의, 로마 대 비로마의 권력 관계를 반영하는 거울이라 할 수 있다.

굳이 지중해 전체의 권력 관계를 반영하는 수도 로마의 포룸 로마눔을 알아야 할까? 극동 아시아의 소국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 누구나 이런 질문을 해볼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질문에 명확하게 답할 수는 없다. 몰라도 일상 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인문학적 교양 운운하면서 고상한 척 할 마음 또한 없다. 다만 로마의 역사와 사회를 연구하는 것은,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다양하게 해석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옥타비안 (아우구스투스 초대 황제)이 기원전 31년 악티움에서 안토니우스를 물리쳤던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악티움 해전과 연관된 또 다른 역사적 사실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아우구스투스의 보수 반동 정책, 안토니우스의 친동방 정책, 클레오파트라와의 연합전선, 이집트식 신격화 수용 등), 이 사실들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질 때 새로운 해석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로마의 역사와 사회를 제대로 알아 기존의 역사 해석과는 다른 해석이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닫을 수 있다. 그 인식 과정을 통해 정신적으로 한 단계 성숙해질 것이다. 사유야말로 진정한 스포츠라는 미셀 푸코의 말처럼 매일매일 생각하는 것이 우리를 아마츄어가 아닌 프로, 즉 전문가로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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